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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약속 말씀/성경 인물

욥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고 화복을 따지지 않았다

욥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고 화복을 따지지 않았다


   

욥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고 화복을 따지지 않았다


   여기에는 성경에 기록된 욥의 이야기에서 언급한 적이 없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오늘 우리가 이야기할 중점이다. 욥은 비록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귀로 듣지도 못했지만, 욥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위치가 있었다. 욥은 하나님을 어떤 태도로 대했을까? 바로 앞에서 말한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라는 것과 같다. 이 ‘찬송’은 조건이 없고 배경이 없고 그 어떤 원인도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욥이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이 주관하게 했다는 것을 보게 된다. 욥의 마음에서 생각한 것과 작정한 것과 계획한 것은 다 하나님에게 봉해져 있지 않고 열려 있었으며, 마음은 하나님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었다. 욥은 하나님에게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해 달라고, 무엇을 베풀어 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으며, 하나님을 그렇게 경배하면 무엇을 얻을 수 있다는 지나친 욕망도 품지 않았다. 욥은 하나님과 거래를 하지 않았고, 하나님에게 그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으며, 토색하지도 않았다. 욥이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한 것은, 만물을 주재하는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병으로 말미암은 것이지, 자신이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욥은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든 화를 입든,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병은 바뀔 수 없기에, 어떤 상황에 처하든 하나님의 이름은 당연히 찬송을 받아야 한다고 여겼다.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복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주재로 말미암은 것이고, 하나님으로부터 화를 입는 것도 하나님의 주재로 말미암은 것이며,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병은 사람의 모든 것을 주재하고 안배하고 있으며, 조석으로 변하는 사람의 화복은 모두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병의 창현(彰顯)이며, 어느 각도에서 보든 하나님의 이름은 찬송을 받아야 한다고 여겼다. 이것은 욥이 한평생 체험하고 인식한 것이다. 욥의 그런 모든 마음과 행위는 하나님의 귀에 상달되었고, 하나님 앞에 이르렀으며, 하나님은 그것을 귀히 여겼다. 하나님은 욥의 그런 인식을 소중히 여겼고, 욥에게 있게 된 그런 마음도 소중히 여겼다. 그 마음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분부를 기다리고 있었고, 언제 어디서나 자신에게 임하게 될 모든 것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욥은 하나님에게 요구가 없었다. 욥이 자신에게 요구하여 행한 것은 하나님에게서 오는 모든 안배를 기다리고, 받아들이고, 마주하고, 순복하는 것이었다. 욥은 이것을 자신의 직책으로 여겼는데, 이것 또한 하나님이 원했던 것이기도 하다. 욥은 하나님을 본 적이 없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무엇을 말씀하거나, 무엇을 분부하거나, 무엇을 가르치거나, 무엇을 타이르는 것을 들어본 적도 없다. 지금의 말로 하면 바로 하나님이 그 어떤 진리 방면에 관해 깨우쳐 주고 인도하고 공급해 주지도 않은 상황에서, 욥에게 그런 인식이 있고 하나님을 대하는 그런 태도가 있게 된 것은 매우 대견스러운 일이다. 욥의 그런 표현들은 하나님에게 있어서 족한 것이며, 욥의 간증은 하나님이 칭찬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욥은 하나님을 만난 적도 없고, 하나님의 직접적인 가르침을 들은 적도 없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기에 욥의 마음과 그 본인은, 하나님 앞에서 심오한 도리만 말하고 큰소리만 치고 제물을 바치는 말만 할 뿐 하나님에 대해 그 어떤 참된 인식도 없고 하나님에 대해 참된 경외가 없는 그 사람들에 비하면 훨씬 소중하다. 그것은 욥의 마음이 순결하고 하나님에게 숨기는 것이 없으며, 욥의 인성이 성실하고 착하며 정의와 긍정적인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 인성을 갖추고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도를 준행할 수 있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일’을 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주재를 볼 수 있고, 하나님의 권병과 큰 능력을 볼 수 있으며,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할 수 있다.



욥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고 화복을 따지지 않았다



 그런 사람만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수 있다. 그것은 그런 사람이 화복을 따지지 않기 때문이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장악되어 있기에 사람의 걱정은 무지몽매한, 이지 없는 표현이고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사실에 대해 의심의 태도를 갖고 있는 표현이자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표현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욥의 이런 인식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다. 지금 보면, 하나님에 대한 욥의 이론적 인식은 너희가 알고 있는 만큼 많았느냐? 하나님이 그때 했던 사역과 말씀은 아주 적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려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욥에게 그런 성과가 있게 된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욥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한 적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적도 없고, 하나님의 얼굴을 본 적도 없는데, 하나님에 대해 그런 태도가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욥의 인성과 그 자신의 추구로 말미암아 도달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욥의 인성과 추구는 지금 사람들이 갖추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 그 시대에, 하나님은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고 말씀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 시대에서 벌써 욥을 그렇게 평가하고 있었고 그런 결론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물며 지금이야 더 말할 것이 있을까?

                                                                                     출처 ; 하나님의 약속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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